탄광정보센터

광물과 석탄

강원도 석탄산업

관련시설 장비

시대별 지역생활

탄광지역 종합개발

  • 마차리 탄광문화촌
  • 산양농산촌체험마을
  • 구래숯마을
  • 신동안경다리탄광마을
  • 태백 광산역사체험촌
  • 산탄광산 아트밸리

분류별 정보

탄광정보센터
강원도 석탄산업
확대 축소 스크랩 즐겨찾기 인쇄 이메일
알고 이해하는 우리의 역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표가 됩니다
1957년 이후 1966년까지 10년간은 한국 석탄산업의 최고 황금기였다. 탄광개발이 활성화되어 탄광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고, 고속성장을 거듭하였다. 수요 또한 증가하여 시장 규모는 매년 확대되었다. 발전소 등 산업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가정을 상대로한 민수용 수요까지 급증하여 석탄증산에 따른 수요창출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되었다. 정부는 '석탄개발에 관한 임시조치법'과 석공법 개정, '광업법' 제정 등 적극적인 석탄증산정책 하에서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계속적으로 증산을 지원했다. 그러나 증산보국의 석탄산업에도 복병이 있었다. 수요의 증가에 따른 공급체계의 지속적인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966년 10월 이른바 '연탄파동'으로 정부의 연료정책이 유류 위주로 급선회하면서 석탄산업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군사혁명정부의 석탄정책
군사혁명정부의 석탄정책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이 발생하였는데 그 역사적인 평가라든가 정치사적인 시각에서의 의의에 대하여 거론한다는 것은 본 탄광지역개발사의 발간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아래 거론하지 않기로 하고, 다만 석탄산업과의 연관아래에서는 발전과 성장에서 혁명적인 치적을 쌓는 기반을 구축하였고, 과감한 정책을 추진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데에 굳이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1962년을 기점으로 한시행은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에도 계속 순차적으로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계기를 마련한 의의 또한 결묘 과소평가할 일은 아니라고 평가된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5월 19일에 설치되었고 7월 3일 혁명주체세력의 지도자인박정희 소장이 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하였으며, 송요찬은 내각수반에 임명되었다
7월 24일에 정부 조직으로 경제기획원이 신설되어 경제개발 5개년계획 업무를 관장하게 되었다. 11월 9일에는 물가조절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공포되어 양곡 ·비료 · 연탄 등의 가격이 통제되었다. 그리고 동년 I2월 31일에는 석탄개발임시조치법이 공포되어 석탄광구를 대단위화로 통합한 탄좌 개발제도가 마련되어 석탄개발사에 획기적인 증산체제를 구축하였다.
1962년 2월 15일에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발표되어 경제발전과 국가의 부강을 실현하는 토대를 구축하였으며, 석탄산업도 그 일환으로 대 약진의 전기를 포착하였다. 동년 5월 29일에 광업개발조성법이 제정되었는데 석탄광 개발도 이법에 포함되어 혜택을 입게 되었다. 즉, 탄광을 개발하는데에 소요되는 투자금을 융자함에 있어 광산을 평가한 광업권을 담보로 광업권자에게 자금을 융자 대출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12월 17일에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어투표율 8528%에 찬성표 7878%로 가결됨에 따라 1963년 10월 15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박정희 대통령후보가 당선되었고, 12월 17일에 제3공화국이 공식발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