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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이해하는 우리의 역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표가 됩니다
1957년 이후 1966년까지 10년간은 한국 석탄산업의 최고 황금기였다. 탄광개발이 활성화되어 탄광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고, 고속성장을 거듭하였다. 수요 또한 증가하여 시장 규모는 매년 확대되었다. 발전소 등 산업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가정을 상대로한 민수용 수요까지 급증하여 석탄증산에 따른 수요창출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되었다. 정부는 '석탄개발에 관한 임시조치법'과 석공법 개정, '광업법' 제정 등 적극적인 석탄증산정책 하에서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계속적으로 증산을 지원했다. 그러나 증산보국의 석탄산업에도 복병이 있었다. 수요의 증가에 따른 공급체계의 지속적인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966년 10월 이른바 '연탄파동'으로 정부의 연료정책이 유류 위주로 급선회하면서 석탄산업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1.2차 석유파동과 경제적 영향
1.2차 석유파동과 경제적 영향
석 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Petr이eum Exporting Countries)는 1960년 9월 원유가격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이라크 정부의 초청으로 개최된 바그다드회의에서 이라크,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의 5대 석유생산 수출국 대표가 모여 결성한 협의체로, 1950-1960년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어 원유의 공급과잉사태가 일어남에 따라 국제석유차본이 원유 공시가격을 인하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산유국들이 이 기구를 결성하고 공시가격의 회복 및 인상을 주도했다.
결성 당시에는 원유공시가격의 하락을 저지하고 산유국간의 정책협조와 이를 위한 정보수집 및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원유가격 카르텔(담합) 성격의 기구였으나,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을 주도하여 석유가격 상승에 성공한 후부터는 원유가 의 계속적인 상승을 도모하기 위해 생산량을 조절하는 원유생산 까르텔(담합) 기구로 변질되었다.
2005년 현재 회원국은 아프리카의 알제리, 나이지리아, 리비아, 라틴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 중동의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등 11개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회원국이 임명하는 이사회가 있으며, 본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다. 2002연말 기준으로 전 세계의 석유 확장매장량은 1조 477억 배럴로서 현재 생산량을 기준으로 평가한 석유자원의 가능 채굴년수는 40.6년이며 석유 총 매장량의 782%는 OPEC 산유국에 분포되어 있고, 나머지 218%가 비OPEC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지역별로는 중동지역의 매장량 분포가 654%로 석유자원의 지역편중이 크다. 개별 국가로는 사우디아 라비아가 석유매장량 점유율 25%로 최대 차원 보유국이고 이라크가 점유율109%로 세계2위이다.
석유 생산을 지역별로 보면, OPEC 회원국으로 초대형 산유국들이 집중된 중동지역이 세계 산유량의 약 285%를 차지하고 있고, 구소련을 포함한 유럽과 유라시아 대륙이 2.2%, 북미지역이 18.7%의 순이다.
또한 '73년 10월 6일에 발발한 중동전쟁을 계기로 석유수술국기구(OPEC)는 일방적으로 석유생산의 감축과 가격인상을 단행하여 전 세계의 석유 소비 국가들에게 심대한 타격과 경제적 혼란을 일으키게 한 세계적인 대사건을 세계 석유 파동이라 지칭하고 있다.